독일 복음여행을 다녀오면서 느낀 것은 하나님의 생명은 끊임없이 솟는 생명이고 우리는 통로로서 항상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배가 있을 때 우리가 그 안배에 아멘 한다면 우리의 아멘에는 주님의 공급이 따를 것이고, 그 공급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표현하게 됩니다. 우리는 가야하고 나아갈 때는 항상 공급할 수 있도록 내가 누린 그리스도를 가지고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개인의 낚싯줄의 문제가 아닌 단체적인 몸의 그물망의 문제입니다. 독일에 가는 것에 있어서 나의 원함이 간절하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고, 내안에 부담이 많거나 없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했던 것은 하나님은 독일 땅에 있어서 간절하시고 부담을 가지고 계시며 실제로 그곳에서 움직이고 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내안에 천연적인 원함이나 부담이 있는지 관심하는 것보다 다만 안배해주신 길에 아멘 한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공급이 따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타고난 노력으로 하나님을 표현할 수 없지만 이러한 공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표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생명의 공급은 우리가 그분께 열려있는 통로일 때 효력이 있습니다. 은혜의 비가 충분히 쏟아져 내렸을 때 그 방주가 움직여 어디로든 갔듯이 우리가 열려있고 생명의 공급이 충만할 때 우리는 그 생명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일을 하게 됩니다. 또한 이 열려있는 통로의 문제는 수직적으로는 하나님께 열어드리는 문제이지만 수평적으로는 지체들과 하나 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자신을 보류하거나 보존하거나 고집한다면 우리는 그물망으로서 지체들과 짜여질 수 없습니다. 한마음 한뜻, 하나 됨은 영안에서만 가능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천연적인 생명을 살기를 부인하고 영안으로 계속 돌이켜 주님과 한 영 안에 머물기를, 지체들과 영안에서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하나 되기를 훈련해야 합니다. 우리가 일을 만질 때 우리는 결과에 대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쉽게 효율성을 따지고 자신의 생각 안에 있게 됩니다. 많은 때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고 어떻게 해야 더 잘할 수 있는지, 무엇이 더 나은지 알고 있는 것이 함께 동역하는 것에 장애물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을 다만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 일이 얼마나 효율적인 과정을 통해 얼마나 좋은 결과를 냈는지가 아니라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자신을 내려놓기를 배우고, 기꺼이 주님께 깎이기를 허락해 드리고, 영 안으로 돌이켜져 하나님의 생명으로 채워져 그 영 안에서 하나가 되었는지가 주님의 원하시는 것이고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는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한마음 한뜻, 하나됨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생명의 흐름을 위한 하나의 통로가 되고 그 일의 결과는 그 생명의 흐름의 자연스러운 결과물이 됩니다. 균형 잡혀야 하는 것은 우리가 자신을 내려놓아야 하지만 이것은 우리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떨어져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몸의 한 부분인 지체로서 그물망의 기능을 위해 자신의 기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은 우리의 기능발휘를 필요로 하고 하나님은 우리의 영을 필요로 하십니다. 우리가 한마음 한뜻 하나 됨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이 흐르게 할 수 있는 길은 우리의 영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독일 땅에서 본 것은 하나님은 정말 신속하게 그 분의 일을 하고 계시고 그 움직임에 동참하지 않는 하루는 너무 헛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깨어있어야 하고 우리의 생활이 주님께 더 얻어질 필요가 있습니다. 독일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사람들을 목양하는 것이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존재가 얼마나 주님으로 적셔져 있고 주님께 열려있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매일매일 보좌 앞으로 나아가 우리의 천연적인 생명을 다루시는 불에 기꺼이 자신을 내어드려야 하고 또 우리의 유일하고 참된, 중심과 목적이 되는 하나님의 생명을 얻기 위해 생명수의 강의 끊임없는 공급을 얻어야 합니다. 오 주님, 자신을 볼 때 비참하고 소망이 없지만 보혈을 힘입고 계속해서 다시 보좌 앞으로 나아갑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기름 바르시고 생명의 법으로 나를 변화시키시고 계심을 신뢰합니다. 내 존재와 생활을 얻어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