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라운 주님의 움직임에 작은 통로로서 참여할 수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복음여행이 일생일대의, 꼭 잡아야 할 기회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원했지만 독일에 가기 전까지의 시간동안 그 생각은 점점 내 자신의 경험과 영성을 위한 기회라는 생각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독일에 가기 전 다시 한 번 그러한 자기중심적이고 순수하지 않은 동기를 불태우셨습니다. 이 복음여행에 참여했다고 해서 내가 영광을 받을 여지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주님만이 영광을 받으시는 주님의 놀라운 움직임이며, 저는 긍휼을 입고 그 움직임에 제 작은 생명의 분량을 내놓을 기회를 얻은 것이었습니다.
저는 슈투트가르트 팀에 안배되었습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코디를 하면서 ‘한마음 한뜻’에 관한 사역 메시지를 추구했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인 하나와 한마음 한뜻을 위해 팀 안에서 많이 기도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움직임에는 항상 하나를 지키려는 인식이 있었고, 주님께서 넘치게 축복하실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관심했던 것은 숫자가 아니었습니다. 숫자보다 우리가 관심했던 것은 한마음 한뜻이었고, 우리가 취했던 유일한 길은 기도와 그 영과 말씀이었습니다. 각국에서 성도들이 복음여행을 위해 모였지만 처음 며칠 동안 제 눈에는 이 성도들이 지체로 보이지 않았고 그냥 외국인으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더 깨어서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 한 명 한 명이 정말 귀한 몸의 지체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국적과 언어의 차이는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우리 각 사람 안에 하나님이 계시고, 이 하나님께서 한 분이시며 하나의 요소가 되시는 것이 체험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러자 팀 안의 지체들이 누려지고, 지체들과 기도하고 동역하고 조율되고 건축될 수 있었습니다.
한마음 한뜻을 위해서, 그리고 열매 맺는 가지가 되기 위해서는 가지치기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훈련 안에서만 그런 환경과 잘려짐이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일 주님 앞에 개인적으로 나아갈 때 주님께서 빛을 비추심으로 나의 어떠함을 드러내고 처리하시는 과정이 있었고, 외국인 지체들과도 서로 온전케 하고 그 가운데 조율되는 과정이 있었습니다. 제가 성과 위주의 일에 익숙해져서 제 안에 사람보다 일을 관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저의 이 어떠함은 일정 중에도 안식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요소가 되었고, 동역해야 할 파트너와도 한마음 한뜻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이 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일정과 상황을 사용하셔서 그것을 처리하고 그분 자신을 분배하시는 역사를 신실하게 수행하셨습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독일인을 만났는데, 독일어를 할 줄 아는 파트너가 독일어로 유창하게 이야기하는 동안 한 마디도 못한 채 두 시간을 보냈습니다. 어떤 대학생은 재접촉까지 했는데도 인생의 비밀조차 말하지 못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어 조급하고 답답한 상태로 주님을 접촉할 때 주님은 그분의 일하심 안에서, 몸 안에서 안식하라는 느낌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다만 기도로 동역하고 부축하기를 훈련했습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만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었고,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파트너 자매님과도 하나될 수 있었습니다. 한마음 한뜻이 있을 때 일은 주님께서 하셨고, 능력도 축복도 주님께서 주셨습니다.
독일에 가서 보고 체험한 것은 지극히 인간적이고 정상적으로 열매 맺는 생활이었습니다. 주님은 독일에서도 기도와 그 영과 말씀을 통해 움직이셨고, 한마음 한뜻을 축복하셨으며, 각 사람에게 그분 자신을 분배하셨습니다. 이러한 주님의 움직임을 직접 보고 누리게 하신 주님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