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뜻

Posted by | 4월 03, 2014 | 입훈동기 | No Comments

저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통해 가족이 구원을 받고 회복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많이 사랑했었고 뜨거운 첫사랑을 간직한 중고등부시절을 보냈습니다. 대학 졸업 후 훈련을 받겠다고 헌신도 했지만 개인적인사정으로 인해 직장생활을 하며 저는 점점 죽어가고 식어져 갔습니다. 그 동안 회복 안에서 봉사도 하고 소그룹도 갔었지만 제 안에 공허함은 깊어졌고, 어려움과 문제와 실패만 되풀이되며 약 8년간 한국에서의 직장생활에 지쳐가던 중 우연히 캐나다로 이민을 갈수 있는 너무 좋은 기회가 생겼습니다. 일의 물꼬가 트이자 모든 것이 너무 신속히 진행되었고 남들은 일년이 걸린다는 수속절차도 몇 달도 안 되어 완료되었습니다. 저는 “이제야 주님이 나의 맘을 아시고 길을 열어주셨구나.”라며 확신에 차 캐나다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희생재물로 주실 것을 계획하고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주었지만 그것을 알지 못하고 처음엔 마냥 기뻐만 했던 아브라함처럼 주님의 목적과는 달랐습니다. 사실 전 대학생 때 캐나다에 유학 후 해외사역에 부담이 많았기 때문에 해외훈련을 받고 싶은 갈망이 강했습니다. 그래서 필리핀, 뉴질랜드 훈련에도 지원을 하려 했지만 주님은 제겐 허락하시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이민의 꿈을 품고 갔던 캐나다에서 주님은 10일이 채 되기도 전 저의 모든 계획과 꿈을 무너뜨리시고 저는 가진 것도 없이 홀로 남겨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절 캐나다 Calgary 교회에 연결되게 하셨고 거기서 참된 몸의 생활과 달콤하고 풍성한 그리스도를 맛보았습니다. 정말 그 시간은 저의 교회생활 중 가장 달콤한 교회생활이었습니다.
저는 두 가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강권하시는 사랑이 세상과 나만의 계획에 바빴던 저를 이끄셨음을 보았습니다. 시편 90편 10절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란 말씀을 보면서 그 동안 달음질하고 분투했던 저의 인생이 공허와 슬픔과 고통뿐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신속히 지나갈 이 인생을 드려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저는 이렇게 헌신의 기도를 울며 드렸습니다.

“주님 내가 이제는 가진 것 없고, 붙잡을 것 없고, 의지할 것 없음으로, 그래서 주님 외에는 바라볼 것이 없음으로 인해 하나님께 찬양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날 끝까지 사랑하셨고 몇 년 동안 방황해도 놓지 않으셨군요. 당신은 나의 죽을 목숨을 살리셨으니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남은 제 일생을 다만 당신께 드립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너무 사랑합니다.”

주님은 나의 의지를 꺾으셨지만 그로 인해 하나님의 뜻 온전히 이뤄진다는 찬송이 있습니다. 여전히 해외훈련에 부담이 있었기에 캐나다에서 장로 형제님을 통해 단기로 FTTA에 신청을 했지만 자국 훈련의 원칙으로 저는 한국훈련을 권면한다며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하나님이 저에게 정하셨던 뜻은 한국 훈련이었고, 그걸 무시하며 9년을 주님과 씨름하며 고집을 피웠던 야곱이었음을 보았습니다. 그것이 설사 하나님을 위한 것으로 보일지라도 하나님의 뜻 또는 시기와 부합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하나님께 기쁘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을 보고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국훈련센터에 오게 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9년을 넘게 주님과 씨름하였지만 절 포기하지 않고 한국훈련에 오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긍휼이며 성령의 끊임없는 역사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저의 것으로 분주한 사람이 아니라 그분과의 장벽을 매일 조금씩 파내고 처리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조용히 기다리며 통로가 되어드리고 감정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행하고 믿음 속에 간구하고 하나님이 절 쓰시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FTTS Sr. 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