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독일 복음 여행 – Sr. Kim

Posted by | 7월 22, 2016 | 해외개척 | No Comments

저는 이번 독일복음여행의 일정 중에서 캠퍼스와 공원으로 나가 사람들을 접촉하는 실행에 가장 큰 인상을 받았습니다. 이번 제 7차 독일복음여행에서는 캠퍼스나 공원으로 나가서 사람들과 접촉할 때 바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접촉하는 사람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면서 친구가 되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다시 만날 약속을 잡는 것을 목표로 하는 인도가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저희가 가지고 있는 무엇인가를 주기 전에 이 사람들이 먼저 우리를 신뢰할 수 있도록 하고, 저희도 저희가 접촉한 사람들이 신뢰할만한지 확인하기 위해 인간적인 관계 맺음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전에 먼저 이들의 인간적인 필요를 관심하는 실행이기도 하였습니다. 이 실행에 대해 인도하는 형제님께서는 성경에 나오는 두 가지 본을 제시해주셨습니다. 첫 번째 본은 사복음서에서 죽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길을 가고 있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던 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제자에게 바로 자신을 드러내시지 않으시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다 알고 계심에도 불구하고 두 제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냐고 하시면서 대화를 시작하셨습니다. 두 제자가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일에 대하여 말을 다 하고 난 뒤에서야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부활하신 그분 자신을 계시하셨습니다. 두 번째 본은 사도행전에서 빌립이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복음을 전했던 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빌립이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러 갔을 때, 빌립은 바로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니라 내시에게 무엇을 읽고 있느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내시는 이사야서에 예수님에 대한 예언을 읽고 있었고 그가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말하자 빌립은 그것을 해석해주며 그에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러한 인도와 본을 따라 복음을 위해 사람들을 접촉할 때 두 가지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첫째로 주님 앞에서 제게 얼마나 사람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없었는지가 드러났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인생의 비밀을 말하는 일보다 그들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되는 것이 제게는 더 어려웠습니다. 주님께서는 제가 지금까지 많은 때에 사람에 대한 사랑 없이 그저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왔다는 것을 빛비춰주셨습니다. 저의 예전 생활 가운데서 여기 복음여행의 실행처럼 처음 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친구가 될 기회는 너무나 많았지만 제가 그러지 않았던 이유가 제가 제 자신만을 관심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빛비춰주셨습니다. 참된 복음을 위하여 필요한, 사람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마음이 제게 얼마나 결핍되어있었는지, 제가 얼마나 주님과 하나가 아니었는지를 드러내신 주님께 감사합니다.

두 번째로 복음을 전하는 정상적이고 평범한, 그리고 신성한 생활이 무엇인지를 배웠습니다. 저에게 복음전파는 누가 시키지 않는다면 하고 싶지 않고, 스스로 하고 싶은 부담이 생겨도 자아를 많이 부인하고 해야 하는 고통스러운 일로 느껴졌었습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사람과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고, 연락처를 교환하고, 친구가 되고, 교제를 지속하면서, 주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복음을 전하는 이러한 생활은 살아낼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친구를 많이 만드는 일반적인 사교활동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지체들과의 끊임없는 기도와 간구가 있었습니다. 사람과 접촉하는 그 순간에도 한 지체가 말을 나누고 있을 때 다른 한 지체는 속으로 그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럴 때 주님께서는 항상 그리스도를 말해낼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는 이 독일복음여행에서 처음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일’을 하러 갔다고 생각했었지만, 실제로는 지체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누리고, 주님의 일하심을 위하여 기도하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함께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그들과 친구가 되고, 주님께서 기회를 주실 때 그리스도를 말해내는 ‘생활’을 하고 왔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생활과 지체들을 통해 저를 더 많이 구원하셨습니다. 제가 앞으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하고, 또 살 수 있는지 보여주셨습니다. 정상적이고 평범한, 그러나 신성한 생활이었습니다.